포스팅을 참 오랜만에 합니다. 그간 많은 일이 있었네요. 팀원 중 한 사람이 갑자기 퇴사 통보하는 바람에 계획에도 없던 휴가를 급하게 내면서 정말 아무 것도 안하는 '휴식' 그 자체를 즐기기도 했고, 복귀하고 나니 그 빈 자리가 엄청 크게 느껴지네요. 일이 많았습니다 이래저래.


휴일입니다. 여유를 가지고 다시 미생을 정주행 합니다.





김 대리, 동식이가 오 과장에게 깨지고 있네요.


상식 : 아니, 실수라곤 도통 모르던 놈이 어쩌다 그랬어?

동식 : …

상식 : 중국 딜레이 건으로 정신 없었던 거 알아. 근데, 여러 번 얘기 했잖아. , 나 둘만 하는 일이라 일당백이어야 한다고.

동식 : 그게 사실 그게, FTA 발효 전이라 제가 체크를 못한 것 같습니다.


이 장면을 장그래가 지켜봅니다.





그래 : 저기 석호 씨, 우리 팀 무슨 일 있는지 알아요?

석호 : 난리 났었어요. 김 대리님이 진행하시던 극세사 먼지떨이 수출 건이요. 이제 와서 바이어 쪽에서 한-EU FTA 조건에 맞춰달라고 했대요. 구두계약 때 잠깐 나온 얘긴데, 김 대리님이 듣고도 놓치셨나봐요. -EU FTA 정식 발효 전이니까, 크게 고려하지 않으신거죠.

그래 : 근데, 제가 알기론 그거 선적 끝나서 내일 아침에 배 뜨는데.

석호 : 그러니까요. 근데 막무가낸가 봐요. 원산지 증명서 첨부해서 계약된 날짜 안에 인도 안되면 계약 무효화 한다고



난리 난 상황이네요. 바이어 입장에서 한-EU FTA의 영향으로 관세혜택을 받고 싶은게 당연하겠죠. 이건 철저하게 챙기지 못한 동식이의 잘못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시점이 좀 이상한데요?

장그래를 포함한 인턴들이 최종 PT 자료를 낼 때 모습입니다.




저기 접수대에 분명히 "2012년도 원인터내셔널 신입사원 PT면접 접수처" 라고 적힌 거 보이죠?

한-EU FTA는 2011년 7월 1일 자로 발효되었습니다. 이상하죠? 분명히 위의 대화에서 FTA 발효 전이라고 했는데 2012년 이라니요.

현직자 눈에만 보이는 옥의 팁니다. 드라마 작가들 입장에선 '시청자가 그 정도 세부적인 것 까지 따지겠느냐...'고 생각할 만 하지만, 그래도 뭔가 아쉬운건 사실입니다.


한-EU FTA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할 말이 많은 사람입니다, 제가.

8년 반 쯤 전, 저는 영국에 있었어요. 교환학생의 자격으로 말이죠. 제가 듣던 수업 중의 하나가 'Introduction to the European Union' 이라는 이름의 과목이었습니다. 담당 교수님은 '넌 교환학생이니까, 특별히 시험을 면제시켜줄게. 대신 지금 내가 주는 인스트럭션에 맞게 리포트를 하나 제출해 줘.' 라고 하시며 부담을 엄청 덜어주셨던 기억이 나네요. 제가 썼던 레포트는 (물론 영어로 썼겠지만) '한-EU FTA의 단기적 효과 및 중/장기적 효과' 라는 제목이었습니다. 2010년 초였는데, 그 당시에 한국 국회에서 한-EU FTA가 비준되었거든요. 비준이 됐다고 바로 발효되는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내용이라 생각하고 자세한 내용은 생략합니다. 그 때, EU에서 크게 수혜를 볼 수 있는 품목으로 돼지고기 (Samgyeopsal 이라고 이텔릭체로 쓰고 주석에 Pork belly라 썼던게 생각납니다)와 자동차 라고 썼던걸로 기억합니다. 우연의 일치 일지는 모르겠는데, 제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날이 2011년 7월 1일입니다. 이 때까지는 몰랐죠. 제가 그토록 많은 양의 유럽향 선적서류를 상대하게 될 것이라고는.... 신입사원 1년 시절 동안, 제가 맡은 아이템의 주된 수출 시장이 유럽과 중동이었습니다. 


여하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결국 원인터 영업3팀은 힘들게 힘들게 (그리고 비용이 추가되면서) 한-EU FTA에 부합한다는 증명서를 발급받아 무사히 체코로 수출을 완료하게 됩니다.






위의 사진을 보면 문서의 제목이 '품목별 원산지인증수출자 인증서' 라고 되어있죠? 제가 이 드라마를 보면서 정말 감탄한 것들 중 하나가, 실무에서 사용하는 서류를 정말 똑같이 옮겨놨구나... 싶을 정도로 꼼꼼하게 챙겼다는 점이에요. 저 프린팅 되는 서류, 실제 세관에서 발행해주는 겁니다. 

그런데 이걸 보면서 (옥의 티 까지는 아니지만) 좀 아쉽다 싶은 부분이 하나 더 생깁니다. FTA를 적용하기 위한 과정들과 그 서류들을 잘 알고 있다면, 제가 왜 아쉽다고 하는지 아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간단하게 설명하기 위해 한-EU FTA에 대해서만 설명을 할게요. 한-EU FTA 협정서 전체를 읽어본 분이 몇이나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업무 때문에 어쩔수 없이 읽게 되었죠....ㅠㅠ) 이 협정서에는 각 품목별로 관세율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각 품목들은 저마다의 고유 코드가 있는데요, 우리는 이걸 HS 코드 (세관부호, Harmonized Commodity Description and Coding System Code) 라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10자리를 기준으로 얘기하고 있구요, 국제표준으로는 보통 6자리를 많이 사용합니다. (그러니까 뒤의 4자리는 세부 구분을 위한게 되겠죠?)


예를 들자면, 과거 2G 시절 사용하던 CDMA 방식의 휴대전화 HS 코드는 8517.12.1090입니다. 눈치가 빠른 분들은 느끼셨겠지만 10자리 중간 중간에 점(.)이 찍혀있습니다. 이게 각각 대분류-중분류-소분류를 구분하기 위한 것인데요. 


8517 : 전화기(셀룰러 통신망이나 그 밖의 무선통신 망용 전화기를 포함한다)와 음성, 영상이나 그 밖의 자료를 송신용, 수신용 그 밖의 기기(근거리 통신망이나 원거리 통신망에서 통신하기 위한 기기를 포함하며 제8443호, 제8552호, 제8527호, 제8528호의 송신용, 수신용 기기는 제외한다)


두 번째에 해당되는 12는 '셀룰러 통신망이나 그 밖의 무선통신망용 전화기'를 설명하고 있구요,

세 번째의 4자리 같은 경우는 아래와 같이 정의됩니다.


10 (이 경우는 8자리까지만 쓸 때) : 코드분할다중접속을 사용하는 동기식

1010 : 디지털 방송수신이 가능한 것

1090 : 기타


HS코드에 따라 관세율이 달라진다는 것은 이미 설명했고, 한-EU FTA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이게 한국에서 제조되었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굉장히 귀찮고 복잡하고 짜증나는 작업인데요 (게다가 2~3년마다 한 번씩 갱신합니다. 굉장히 귀찮아요) 이를 위해 완성품의 제조에 쓰인 모든 원재료의 명세서와 그 구입증빙을 세관에 제출해야 합니다. 원재료명세서(BOM : Bill of Materials)라는걸 만들어야 하구요, 각각 원/부재료의 구매영수증도 첨부해야 합니다.

드라마에서 원인터 울산공장 직원이 "섬유는 한국산, 중국산 섞어썼고예, 부자재는 대만산 썼습니더" 라고 하는 대사를 들을 수가 있는데요. FTA 협정서를 보면 전체 원재료 중 일정 비율 이상이 한국산이어야지만 완성품을 한국산으로 인정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최대한 유리한 방향으로 접근해야됩니다. 아까 설명했던 HS코드가 변경하는 것을 기준으로 둘수도 있고, 부가가치가 달라지는 것을 기준으로 할 수도 있겠지만, 대개는 HS코드가 어떻게 변하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쉽게 설명하면 주 원재료의 HS코드의 앞 6자리가 123456인데 완성품의 HS코드가 789012 라고 한다면, 이 HS코드 변경에 따른 제품 변화를 설명하기 매우 쉬워지죠. 이 경우 한국산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여하튼, 오 과장과 김 대리가 울산과 서울을 왔다갔다 하면서 이걸 증명하기 위해 많은 서류들을 뒤집니다. 그리고 위의 사진에서 볼 수 있는 '품목별 원산지인증수출자 인증서'를 받아서 끝내 해결을 하게 되죠. 그런데 말입니다. "품목별" 이라고 하는 말이 붙는걸 봐서 뭔가 다른게 더 있을 것 같지 않나요?


원산지인증수출자 제도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품목별. 그리고 업체별. 품목별은 말 그대로 각 품목 마다 인증을 받는 방법입니다. 품목이 하나 추가될 때마다 저 귀찮은 작업들을 해야되는거죠. 그런데 업체별 인증수출자로 인증이 되면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업체 전체가 인증수출자로 인정이 되었으니 말이죠. 대신 이 업체가 판매하는 모든 제품이 FTA 규정을 준수하는 한국산이어야 한다는 것을 증명할 책임이 뒤따르고, 이를 관리하기 위한 시스템을 별도로 도입해야 합니다 (이게 비용이 좀 많이 들어서 잘 안하려고 해요). 드라마를 보면 원인터는 직접 공장을 가지고 있어요. 그렇다면 품목별이 아니라 업체별 원산지인증수출자 지정을 검토해봤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앞서 언급한 것 처럼 이게 돈이 많이 들어요. 그래서 안받았다...고 생각할 수는 있겠죠.


더 아쉬운 부분은 이겁니다. 체코의 바이어가 한-EU FTA를 적용받을 수 있도록 인증서를 달라고 하는데, 사실 이건 인증서를 전달하면서 증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EU FTA의 경우, 수출자가 상업송장 (Commercial Invoice; 그냥 흔히 인보이스 라고 합니다)에다 아래의 문구만 추가하면 되는 끝나는거죠.


The exporter of the products covered by this document (customs authorization no. "세관에서 받은 업체별/품목별 인증수출자 인증서 번호") declares that, except where otherwise clearly indicated, these products are of KOREA preferential origin.


인보이스에 위의 문구만 추가하면 끝납니다. 물론 그 전에 인증수출자 인증서를 확보해야겠지만요. 드라마에서 꼭 인증서를 제출해야되는 것 처럼 비춰진게 아쉽습니다. (저도 유럽쪽으로 수출 안해봤으면 어차피 몰랐을 일이니 드라마 작가진들한테 뭐라 그럴 필요는 없지만요)


혹시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자기 회사에서 직접 생산한 제품을 유럽에 판매하고 있다면 "업체별" 인증수출자 인증을 한번 검토해보시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비록 비용도 들고 관리도 꼼꼼하게 해야하지만, 품목이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인증 진행하는 스트레스... 그거 무시 못합니다. 제가 지난 5년간 미치도록 했던게 이거거든요... 

요즘 금융권의 채용비리가 참 시끌시끌하죠. 강원랜드 인사청탁 건도 그랬구요. 저 같은 흙수저 출신은 '내가 가고 싶은 자리는 어느 누군가의 자리로 결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면 분노를 금치 못하게 되죠. 





하 대리 : 아... 저 친구가 그 친군가 보네.

정 과장 : 어?

하 대리 : 오 과장님네 인턴이요. 누구 줄인지는 모르겠는데, 낙하산.

정 과장 : 옛날에 모 명문대에 총장한테 편지써서 합격한 애가 있었거든? 꼭 입학해야만 하는 절절한 이유가 총장 마음을 움직였지. 그런데 어떻게 된 줄 알아? 한 학기 다니고 자퇴했어. 왜? 따라가질 못하니까. 저 친구 고졸 검정고시가 최종이라는데… 특별한 이력도 없고. 

하 대리 : 어떻게 아세요? 

정 과장 : 인사팀에서… 잘 해줘라, 어차피 오래 못 버틸 테니까. 


드라마에서는 최 전무 (이경영 분) 가 장그래의 인턴 입사에 영향을 준 것으로만 나옵니다. 원작 웹툰에서는 조금 더 자세하죠. 장그래가 한국기원 연습생이던 시절 후원해주던 분이 계셨는데, 이 분의 지인이 원인터의 사장이었다는 설정입니다. 현실에서는 굉장히 나오기 힘든 케이스죠. 원인터 같은 대기업에서는 더더욱 말입니다. 물론 회사가 가족회사 (가 족같은 회사 일수도....) 라면 실제로도 충분히 가능하지만, 아무리 낙하산으로 꽂는다고 하더라도 기존 직원들과 비슷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 가능하겠죠 아무래도...


회사 생활 하면서 낙하산 비슷한(?)건 본 적이 있습니다. 특이하게도 한국인도 아니었어요. 러시아 국적에 대학은 영국에서 나온 친구였습니다. 그러니까 언어 구사만 놓고 보면 러시아어>영어>한국어 인 참 독특한 배경의 친구였죠. 알고보니 거래처 사장 아들... 대략 2년 정도 근무하다가 이 친구도 퇴사한지 좀 됐군요. 근데 듣다보면 그런 거래 관계 때문에 낙하산 비슷하게 입사하는 케이스가 종종 있는 모양입니다. 원인터의 원 모델이 되는 D사에는 거래처인 화학회사인 K사 오너의 자제분이 근무하기도 했었지요 (제가 알기로 그 분은 D사 퇴사 후 K사 중역이 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조금 다른 이야긴데, 예전에 계열사 사장님의 아들 되는 친구가 입사한 적이 있었습니다. 소문만 듣고 있었는데 그 친구 얼굴을 보는 순간 금방 알아버렸지요. '아... 적어도 이 건물 안에서 이 친구는 명함이 필요 없겠구나. 얼굴이 명함이네.' 그래도 이 친구는 대졸공채에 정식 지원하여 합격한 경우였어요. 퇴사하고 대학원 다닌다는데 부럽네요. 뭔가 그냥 부럽습니다. 

직장생활 시작한지 정확하게 만 7년하고 19일 지났다. 친구들이 굉장히 신기해 한다. '니가 이렇게까지 길게 직장생활 할거라곤 난 생각 못했다' 라는 대답이 주를 이루고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그저 머리만 긁적인다. 그랬다. 나는 공부를 더 하고 싶었다. 내 전공은 '국제관계학'. 솔직히 말하자. 밥 빌어먹고 살기에는 팍팍한 공부다. 예전 내 지도교수님들도 그러셨다. '이쪽 분야로 공부를 계속하겠다는 건 보따리 장수 (*업계용어다. 시간강사를 자조적으로 부르는 용어) 생활을 길게 할 수도 있다는걸 감내해야한다'고.


고등학교 졸업할 때, 이 전공을 고른건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 나이에 무슨 큰 뜻이 있었겠는가. 사학과를 가고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순수 인문학보다는 그래도 사회과학이 '그나마' 먹고 사는덴 더 낫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그게 아무 의미 없다는 걸 깨닫기 까지 5년이 더 걸렸다) 군대 가기 전까지는 그냥 흔히 말하는 '먹고대학생' 이었다. 맨날 술술술. 그런데도 수업 안 빼먹고 잘 듣고 심지어 재미까지 느낀건 신기한 일이었다. 그래도 졸업 후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던 시기였다.


그러던 내가 공부를 하고싶다고 느낀 순간은 아이러니 하게도 투병생활 중이었다. 이제 10년도 훨씬 넘은 이야기니까 아무렇지 않게 말 할 수 있는 얘긴데, 군생활 도중 'Sarcoma (악성종양)' 가 발병됐다. 왼쪽 허벅지에. 병원에서 쓰는 용어로 '좌측 대퇴부 악성종양'. 전신마취를 하는 큰 수술을 두 차례 겪었고, 휠체어를 석달간 타고 다녔으며 암병동에서 6개월간 생활했다. 다행히 나는 비교적 초기에 잡아낸거라 지금까지도 잘 살아가고 있다. 8인실 병동이었다. 내 옆 침대에는 정말 오늘내일하는 말기암 환자들이 있었고, 같은 병실 내에 머리카락이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다들 항암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난 그냥 방사선 치료만 받았으니까. 매일 오전 한 시간 가량의 방사선 치료를 받고 나면 하루 종일 할 일이 없었다. 낮잠도 게임도 어느 정도가 지나면 지겨워졌다, 그 때였다. 엄마한테 전화해서 (수술 직후를 제외하고는 병실에 혼자 있었다. 보호자 없이) 전공책들을 보내달라고 한 것이다. 친구들에게도 부탁했다. 휠체어를 타던 시절이라 활동에 제한이 있어서였을까. 전공서적들이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6개월간 읽은 그 두꺼운 전공서적들이 그 이후 3년간의 대학생활 동안 읽은 전공서적보다 많았을거다.


시간이 흘러 3학년이 되었다. 진로에 대해 슬슬 생각해봐야할 때. 명색이 '국제'관계학 전공자인데 해외에서 공부는 해봐야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교환학생 준비를 했다. 여러 선택지가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영국이 끌렸다. 다른 곳들은 1년 동안 파견이 가능하지만 영국은 6개월만 가능함에도 왠지 모르게 끌렸다. 그리고 IELTS (영국 및 영연방에서 토플 대신에 보는 시험. 물론 영국에서도 토플은 인정된다) 시험 준비를 하고 6개월의 준비 끝에 간신히 IELTS 점수를 획득, 그리고 영국 Aston 대학의 College Language and Social Science로 6개월간 교환학생을 가게 되었다. 


그렇게 영국생활의 꿈에 부풀어 있던 그 때, 비보가 들려왔다. 아버지가 쓰러지셨다고. 그랬다. 아버지는 이미 신부전증으로 인공투석을 받고 있던 몸이었다. 사실 그 전에도 몇 번 쓰러지셨던 적이 있었지만 서울에 혼자 있던 나에게, 가족들은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었다. 학업을 중단하고 갑자기 대구로 내려오겠다는 이야기를 할까봐. 고민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영국을 정말 가야 하는 것인가. 내가 투병생활을 할 때, 알게 모르게 아버지는 내 걱정을 참 많이 하셨다. 두 번째 수술을 앞두고 아버지와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가 '젊은 나이에 이런말 해서 미안한데 (그때 나는 겨우 스물 둘이었다) 이번에 수술 하고 나면 근육을 많이 절제해야돼요. 생활은 하겠는데, 뛰는건 이제 못할지도 몰라요'


나름 장남의 굴레를 짊어지고 살던 나다. 다른 사람에게 약한 모습을 보일지라도 아버지한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었다. 의사에게 그 이야기를 듣고 나오는 길.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그토록 펑펑 울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잠시 나쁜 말 좀 할게요. 씨발, 이걸 쓰면서도 눈물이 난다. 진짜)


그 때의 아버지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펑펑 울고 있는 아들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아버지의 모습. 

그래서 난 아버지에 대해 마음의 짐을 아직도 짊어지고 있다. 아버지 건강이 저렇게 된 건 다 내 탓이라고. 내가 건강하지 못했던 탓이라고.

그래, 가족이 우선이야. 영국은 무슨... 하고 있던 찰나.

모 금융사에서 교환학생을 대상으로 장학금을 지급하는데 거기에 선발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엄마와 동생에게 알렸다. 엄마가 그랬다. '니가 영국을 안가면 아버지 마음이 어떻겠느냐. 장학금도 받는 판에 가족 걱정하지말고 가라'


내 주변 인물들도 모르는 이야긴데, 이 즈음해서 한 교수님에게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 (그 교수님이 아직 기억하실지는 모르겠다)

'너 공부할 생각있냐? 좀 특이하긴 할텐데... 내가 스웨덴 쪽이랑 공동 연구를 진행하려고 해. 니가 거기서 공부하면서 내 연구도 도와주고 그러면 좋지 않을까? 장학금은 받을 수 있을거야. 물론 초기 정착 비용이 좀 들거고 생활비도 일부 보조는 되겠지만 어느 정도 펀딩이 필요하긴 할거야.'

진지하게 생각해보겠다는 답변을 하고 자리를 떴지만, 내가 그 교수님께 이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 할 기회는 오지 않았다. 영국에서의 6개월으로 만족하고 현실을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6개월이 지나 한국으로 돌아왔다. 6개월간 단 한번도 자르지 않은 머리카락을 깎음과 동시에 나는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공식적으로 대학원에서의 공부는 안녕이 되는 순간이었다. 흔히 말하는 스펙이라고는 오픽(OPIc - 영어 말하기 시험) 성적 하나와 나쁘지 않은 졸업평점 밖에 없었다. 참 원서 많이 썼다. 나중에 세어보니 10개월간 120개 정도의 원서를 썼더라. 면접도 많이 봤다. 어느 한 회사에서는 신체검사까지 마쳤는데도 최종 탈락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남은게 두 곳이었다. 보험회사. 연봉은 꽤나 많이 준다고 했다. 단, 대구로 내려가는 조건. 나머지 하나가 상사였다. 연봉은 보험회사보다 세전 천 만원이 적었다. 고민이었다. 현실 따지면서 돈 많이 받고 가족 챙기면서 살 것인가. 아니면 그래도 '국제'라는 말이 들어가는 전공을 했는데 해외도 좀 돌아다니고 하는 일을 해볼 것인가. 이번에도 엄마는 '돈이 중요한게 아니다. 니 마음이 시키는 일을 해라'고 말했다.


그렇게 나는 상사에 들어갔다. 첫 직장이 상사다보니 여전히 그 원죄(?)로 상사에 다니고 있다. 이런 저런 일을 겪으면서 인생이란게 다 그런건가 싶다. 인생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공부란걸 다시 해보고 싶다. 그게 꼭 국제관계학이 아니라도 좋다. 그러지 않으면 죽기 전에 평생 한으로만 남을 것 같다.


p.s. 석사과정 수료만 하고 아직 학위 못 딴 동생아. 오빠의 부탁이다. 제발 논문 쓰고 석사 따줘. 

까대기... 군대를 다녀오신 분이라면 익숙한 그 단어입니다. 까대기'친다'라고 표현하죠.

(왜 '친다'가 동사로 붙어 있는건지는 모르겠습니다. 아시는 분 설명 좀.....)

쉽게 말하면 트럭에 수백개의 박스가 실려있고 그걸 인력으로 다 옮기는겁니다. 뭐 대충....



까대기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요런거 생각하시면 됩니다. 어깨에 짊어지고 까대기 치는 경우도 굉장히 많죠.

저는 탄약창이라는 부대에서 군생활을 했습니다 (뭐... 제대로는 1년밖에 안했고 나머지 생활은 병원에서 보내긴 했었지만)

탄약창은 무지 넓었어요. 텔레토비 동산같이 생긴 탄약고가 겁나 많았구요. 이 탄약고 앞에는 기차 선로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왜냐구요? 전 군이 다 쓰는 탄약이 매일 미친듯이 기차에 실려 들어오거든요. 

군대가 어떤 곳입니까. 그걸 기계로 처리할까요? (물론 팔렛트 처리 된 것들은 지게차로 옮기겠지만....)

'남아도는게 병력' 이라고 생각하는 꼬오오오온대 간부들 (이러니 '우리의 주적은 간부'라고 하죠. 어? 그건 회사도 마찬가진데?)이 

우리 불쌍한 군인 아저씨들 끌고가서 인력으로 까대기 치는 상황을 매일 같이 볼 수 있었죠.

저는 웃기게도 의무병이었는데 (저 해로운 문돌이 출신입니다. 왜 의무병이 된건지는 아직도 미스터리에요) 사람이 부족하니

의무병도 까대기에 동참하라는 참 놀라운 상황을 겪기도 했습니다.




인턴 1 : 아... 이거 헷갈려. 우리가 원래 하는 거에요 이거?

인턴 2 : 아... 뭐, 현장에 일손 부족하거나 하면 도와주기도 한대요.

인턴 3 : 하기사, 한석률 그 친군 아예 현장 근무 자청해서 갔죠.

인턴 1 : 아... 그래도 젓갈 공장은... 이런 현장은 아니죠. 

인턴 2 : 근데 안영이 씨는 여자라서 빼나요? 

인턴 3 : 아, 그 쪽 팀장님이 안 내주셨어요.

인턴 1 : (장그래 쳐다보며) 거봐요. 이런 일 할 사람은 따로 있단 말이죠.



수출할 오징어 젓갈에 꼴뚜기가 섞인것 같다는 김대리의 전화를 받은 오과장이 각 부서의 인턴들을 모아놓고 젓갈 까대기 (이 까대기는 보통의 까대기와 다르긴 하네요. 포장되어 있는걸 뜯어서 뒤적뒤적 꼴뚜기를 찾아야 되는거니까)를 지시하고 난 후의 상황입니다.

저 재수없게 생긴 인턴1 저 놈. 나중에 나오지만 취업 졸라게 안됩니다. 저딴 마인드 가지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써주나요.

(여담입니다만, 회사는 지 잘났다고 하는 놈 안데려갑니다. 진짜 솔직히 말하면 노예근성이 있는 쪽을 더 선호하죠... 씁쓸....)


일전의 글에서 종합상사는 '서류'로 일을 하는 회사라고 이야기 한 적이 있었는데요. 대개 그렇긴 하지만, 까대기를 비롯한 육체 노동이 좀 필요한 경우가 많아요. 미생에서 저런 상황처럼 제품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진짜 몸으로 때워야 하거든요.

저도 저런 경우가 있긴 했어요. 대두(콩, soybean - 네 맞습니다. 두부 만드는 그거요)를 수입할 때의 이야긴데, 보통 식품을 수입할 경우 식품위생법에 의거하여 포장에 한글표시사항을 기재하거든요. 콩이니까 당연히 포대자루에 담겨있고 그 포대에 한글표시사항이 인쇄되어 있어요. 보통 제품명, 원산지, 수출자, 수입자 등등이 적혀있죠. 

그런데.... 수입자로 A라는 업체 이름이 적혀있어야 하는데 B라고 프린팅 된게 들어온겁니다. 이대로라면 제대로 통관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죠. 급하게 부랴부랴 스티커 제작업체에다 B사 이름을 쓴 스티커를 대량 주문합니다. 그걸 부산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하구요. 창고 쪽에다 부탁해서 작업인력 모집해달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업체에 모든걸 맡겨놓기만 할 수는 없으니 저도 부산으로 내려갔어요. 츄리닝입고....

팔렛트 처리 되어있던 것들을 다 해체하고 포대 하나하나 뒤적이면서 스티커를 붙입니다. 포대 하나가 30kg 짜리에요..... 작업 감독으로 가긴 했지만 저도 멀뚱멀뚱 있을 수만은 없잖아요. 제 아이템인데... 미친듯 힘들더군요. 30kg 콩 님의 위력이란.....



직업엔 귀천이 없어요. 그리고 만약 당신이 육체 노동을 하찮게 여긴다면 그 누구도 당신을 써 주지 않아요. 

한동안 언론에 많이 나왔던 단어 중에 '클라우드'가 있었더랬죠. 개인적으로도 네이버 N드라이브나 구글드라이브 참 잘 쓰고 있습니다. 외장하드 치렁치렁 들고다니기도 귀찮은데 클라우드 서비스 이거 얼마나 좋아요. 한때는 회사에서도 구글드라이브를 썼던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어떤 종류의 클라우드 서비스든 제가 다니는 회사에선 블락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보안상의 이유로 말이죠. 


그러면 USB 드라이브를 쓸수 있느냐? 가능은 한데 일일이 결재를 받아야해요. 귀찮죠 솔직히. 이해는 합니다. 보안은 중요한거니까요.

(혹시라도 저희 회사 전산/보안 담당 김 모 차장님이 이 글 보고 계신다면.... 화이팅입니다. 보안은 매우매우 중요한게 맞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제가 왜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야기 했냐구요? 

종합상사는 (일단 한국에서요) 기본적으로 무역회사입니다. 여러 가지 품목들을 수출도 하고 수입도 하고 그러죠.

혹자는 그렇게 말합니다. 무역은 '서류'로 하는거라고... 


그냥 들었을때는 보통 이러시겠죠?


개소리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수출을 하든 수입을 하든 물건이 왔다 갔다 하는건데 왠 서류 드립이냐구요? 물건을 직접 만드는 제조업체라면 당연히 물건이 중요하겠죠. 하지만 상사는 어딘가에서 물건을 사서 또 다른 어딘가에 팔아야 되는 회사다 보니 결국 서류로 모든걸 핸들링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상사에서 제품 자체에 대해 소홀히 해도 된다는 얘긴 아닙니다. 제가 판 물건 자체에 문제가 생기면 결국 제가 책임을 져야 할테니까요....)


미생의 한 장면을 봅시다. 



오... 저 책상아래 서랍장 오랜만에 보네요. 불과 3개월 전까지 저도 저거랑 똑같은 서랍장을 썼어요. 한 15년 이상 된거라고 하더군요 (....)

영업3팀 누군가의 자리일텐데 정확히 누구 자린지는 모르겠네요. 무슨 생각 드세요? 지저분해 보인다구요?


더러워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 제 자리가 저렇지는 않아요. 레알 깨끗 깨끗)


보시다시피 자리마다 엄청 많은 서류들이 쌓여있네요. 선적서류일 수도 있을거고 각종 카탈로그도 보입니다. 보고서 같은것도 있겠죠. 아니면 다른 보고서를 만들기 위한 참고자료라던가.


그런데 미생이 방영된게 2014년이에요 (와... 많이 흘렀어요. 그땐 저도 20대였는데 ㅠㅠ)

제가 첫 직장을 들어간게 2011년인데, 그때도 저렇게 서류 막 쌓아놓고 뒤적뒤적하면서 일 하진 않았다... 이 말입니다. 모든 문서는 일단 스캔해서 파일로 보관하죠. 그래서 예전에 (보안 때문에 블락되기 전) 클라우드 서비스 활용하면서 문서를 관리했다... 그런겁니다.


미생에 나오는 원인터는 여러분들이 잘 아는 그곳, D사가 배경이죠. 첫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D사 출신인 분이 작가진에 자문도 하고 그랬으니까...

근데 D사도 저렇게 서류 쌓아놓고 일 안한대요. 그냥 종합상사 = 무역회사 = 선적서류 등등 서류 겁나 많음... 이런 이유로 

배경에 많은 서류들을 저렇게 쌓아놓지 않았나 싶은데요.


지금이 어떤 세상입니까. 페이퍼리스의 세상이에요. 


결재판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이런거 들고 "부장님... 저 결재 좀...." 하는 건 아주아주 구닥다리 옛날 방식이라 이거죠. 

(근데 가끔 쓰긴 합니다. 20~30대야 모든걸 전산으로 처리하고 전자문서 보내도 크게 거부반응이 없는데 회사에 20~30대만 있는게 아니잖아요? 우리 젊은이들은 그분들을 존중해 드려야 됩니다. 한 20년 후에 무슨 새로운 기술이 나와서 우릴 적응 못하게 만들지도 몰라요)


혹시 드라마 작가분들이 각종 서류에 파묻혀 살면서 시달렸던게 생각나서 모든 책상위에 올려놓았던건 아닐까요?

(저는 분명 성격파탄은 아닌데 저렇게 서류가 쌓여있는 더미를 보면 확 엎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가끔 듭니다. 왜죠?) 


드라마 보다보면 사무실 안에 캐비닛도 그렇게 많지 않아 보이던데... 퇴근하면서 저 서류들은 대체 어디다 치워두는 걸까요?

저 상태 그대로 퇴근하면 아마 다음날 총무부서에서 날아온 경고장을 보실 수 있을겁니다 (...) 

종합상사에서 일을 하게 되면 가장 많이 하는게 이메일 작성입니다. 스캔된 카피라 하더라도 법적 효력이 다 발생하기 때문에 해외업체랑 거래를 진행하다보면 거진 이메일로 모든 대화를 다 주고받고 문서도 주고 받습니다. 미생 1화 시작부분에 김대리가 해외업체에 물건은 제대로 선적됐다고 메일을 쓰고 있네요. 아래 사진과 같이.


(영어로 메일 쓴다고 오~ 이럴 필요도 없고 쫄 필요도 없습니다. 자세히 보면 어휘가 중학교 수준이거든요. 사실 저희 일이 다 그렇습니다. 의사소통만 되면 되는거죠 뭘)


위 사진을 보고 이상한 점을 못 느꼈다면 회사 생활 안해본 사람 티를 팍팍 내는겁니다. (회사 다니고 있는데 이상한 점 못 느끼면 벽보고 반성하세요)

아무리 종합상사가 자기가 담당한 아이템을 각개전투 식으로 혼자 판매하고 그런다지만, 기본적으로 조직생활이라 팀장도 있고 경우에 따라 동료랑 같이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런데 김대리는 수신자에 해외 업체 담당자만 넣고 참조(c.c. ; carbon copy)에 아무도 안넣네요? (극 중에 보여지기만 그렇고 실제론 참조 걸고 발송했다 그러신다면 전 할말 없습니다만.... 여하튼) 이러면 말이죠... 나중에 뭔 일 생겼을 때 진짜 골때릴 수가 있어요. 진짜 농담아니라..


좆되는거야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이건 상사라는 회사라서 그런게 아니라 모든 회사가 마찬가지에요. 저렇게 혼자 모든걸 다 할거라면 개인사업해야죠.


"무슨 일 하시는 분이세요?"

대한민국 사람들은 참 호구조사를 좋아한다. 나이와 사는 곳에 대한 질문이 끝나면 어김없이 무슨 일을 하느냐며 물어본다. 그때마다 나는

"아.. 저 종합상사 다녀요."

라고 대답하면 절반은 "네? 그게 뭐하는 회산가요?" 라는 대답으로 되받아쳐진다. 그럴때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드라마나 웹툰... 미생 보셨죠?" "네" "쉽게 얘기하면 그런 일 해요. 근데 전 장그래는 아니에요. 위치상 김동식 대리 같은 그런거..."


그렇다. 그놈의 미생. 


미생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저기 오른쪽 위의 인물이 김동식 역의 김대명 배우다. 웃기게도 생각해보니까... 내가 대리가 되는 동안 살이 엄청 쪘다. 물론 저만큼은 아니겠지만)


케이블 드라마의 명가 tvN에서 아주 대박이 났던 그 드라마 미생. 그보다도 전에 윤태호 작가가 대박을 쳤던 웹툰 미생. 물론 나도 재밌게 봤다. 드라마도, 웹툰도. 요즘은 웹툰 시즌2를 아주 재밌게 보고 있다. (윤 작가님 건강 조심하세요)


웹툰으로 나올 때는 사람들 사이에 인지도가 아주 높진 않았는데 역시 텔레비전이라는 매체의 파급력이 크긴 큰가보다. 드라마판 미생이 나온 이후에 맨 처음에 이야기 했던 질문을 받게되면 설명하기가 아주 쉬워졌다. 이 자리를 빌어 드라마 제작진 및 배우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드라마가 인기를 끌게 되면서 주변에서 또 다른 질문들을 받게 된다. 


"야, 니네도 진짜 저렇게 일하냐?" 라던가 "진짜 사내 정치질이 그렇게 쩐다며? 상사가" 라던가 하는 질문들. 

그러면 나는 또 이렇게 답한다. "뭐... 작가들이 나름 관찰은 잘 한것 같더라. 물론 디테일을 보면 그건 아닌데"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이 드라마 제작진에 잠시 속했던 (드라마 엔딩크레딧 올라갈 때 "자문" 이라는 네이밍으로 이 사람의 이름이 나온다) 분을 우연히 알게 되었고 페이스북 친구가 되었다. 이 분은 국내 굴지의 종합상사, 업계 1위에 빛나는 D사에서 대략 4년쯤 일하다 그만두고 드라마 제작진에 참여했다가 지금은 모 언론사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다. 실제로 만난 적도 몇 번 되기는 한데 어쩌다가 드라마 미생 이야기가 나오면 


"아니, 형. 상사에서 일했다는 사람이 자문을 한건데 왜 일하는 디테일 같은게 난 공감이 안갈까요?"

"D에서는 그렇게 일했어" 


근데 D사 다니는 다른 내 친구(혹은 선배) 얘기는 또 다르던데??


첫 직장이 종합상사였다는 원죄로 아직까지 종합상사를 8년 째 다니고 있는 쩌리 말단 대리인 나는, 요즘 회사 생활이 매우 재미없음을 느끼지만 먹고 살 다른 활동을 할게 딱히 없다는 이유로 묵묵히 시키는 일이나 빵꾸 안내고 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 블로그는 어디까지나 재미없다고 느끼는 회사 생활 속에서 그나마 재미를 찾기 위한 목적에서 시작해 본다. 

드라마에서 나오던 장면이 실제 회사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는지, 혹은 그런 비슷한 사례는 없었는지와 같은 내용을 명예훼손 같은 법적 무언가를 당하지 않을 수준에서 이 블로그에다 적절히 끄적여볼까 한다. 


어쩌다보니 상사 업계에 지인들이 좀 생겼다. 아무리 내가 말단 쩌리라고 하더라도 지난 8년간의 짬이 있는데 당연하지.

가끔씩은 타 상사를 다니고 있거나 혹은 과거 상사에서 근무했던 지인들의 글도 본인들의 동의를 얻어 게시하려고 한다. 

기대하...지는 말고 그냥 재밌게 봐 주시길.




뱀발 - 여기서 종합상사라고 함은 흔히 잘 알고 있는 70-80년대 재벌그룹들이 자사의 상품을 수출하기 위한 창구(window)로 활용하던 회사를 말한다. 과거 산자부에서 "종합상사"를 지정하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그 제도는 없어졌고 산업부와 무역협회가 "전문무역상사"라는걸 지정한다. 솔직히 지금와서는 의미없는 얘기다. 굳이 저걸 지정받는다고 해서 인센티브가 엄청 많은것도 아니고... 보통 한국기업 중에서 종합상사라고 말할 수 있는 회사들은 대략 이 정도다.


포스코대우(구 대우인터내셔널), 삼성물산 상사부문, LG상사, SK네트웍스(주유소, 호텔 운영하는 부문은 빼고), 현대종합상사, 효성티앤씨(구 (주)효성 무역PG), GS글로벌(구 (주)쌍용), (주)한화 무역부문(구 골든벨상사), 코오롱글로벌 무역부문(구 코오롱상사), LS네트웍스(여긴 사실 좀 애매한 부분이 있지만)


아는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종합상사의 개념은 일본에서 넘어왔다. 잘 알고 있는 유명 일본 기업들이 사실 알고보면 종합상사와 직/간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미츠비시, 미쓰이, 스미토모, 마루베니, 이토추, 소지츠, 도요타통상(약칭 도요쯔)  여기까지 일본 7대 상사라고 하고 그 이외에는 전문상사 혹은 중소상사 라는 표현을 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