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가 망쳐놨어

까대기의 추억

바다비. 2018. 7. 19. 22:09

까대기... 군대를 다녀오신 분이라면 익숙한 그 단어입니다. 까대기'친다'라고 표현하죠.

(왜 '친다'가 동사로 붙어 있는건지는 모르겠습니다. 아시는 분 설명 좀.....)

쉽게 말하면 트럭에 수백개의 박스가 실려있고 그걸 인력으로 다 옮기는겁니다. 뭐 대충....



까대기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요런거 생각하시면 됩니다. 어깨에 짊어지고 까대기 치는 경우도 굉장히 많죠.

저는 탄약창이라는 부대에서 군생활을 했습니다 (뭐... 제대로는 1년밖에 안했고 나머지 생활은 병원에서 보내긴 했었지만)

탄약창은 무지 넓었어요. 텔레토비 동산같이 생긴 탄약고가 겁나 많았구요. 이 탄약고 앞에는 기차 선로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왜냐구요? 전 군이 다 쓰는 탄약이 매일 미친듯이 기차에 실려 들어오거든요. 

군대가 어떤 곳입니까. 그걸 기계로 처리할까요? (물론 팔렛트 처리 된 것들은 지게차로 옮기겠지만....)

'남아도는게 병력' 이라고 생각하는 꼬오오오온대 간부들 (이러니 '우리의 주적은 간부'라고 하죠. 어? 그건 회사도 마찬가진데?)이 

우리 불쌍한 군인 아저씨들 끌고가서 인력으로 까대기 치는 상황을 매일 같이 볼 수 있었죠.

저는 웃기게도 의무병이었는데 (저 해로운 문돌이 출신입니다. 왜 의무병이 된건지는 아직도 미스터리에요) 사람이 부족하니

의무병도 까대기에 동참하라는 참 놀라운 상황을 겪기도 했습니다.




인턴 1 : 아... 이거 헷갈려. 우리가 원래 하는 거에요 이거?

인턴 2 : 아... 뭐, 현장에 일손 부족하거나 하면 도와주기도 한대요.

인턴 3 : 하기사, 한석률 그 친군 아예 현장 근무 자청해서 갔죠.

인턴 1 : 아... 그래도 젓갈 공장은... 이런 현장은 아니죠. 

인턴 2 : 근데 안영이 씨는 여자라서 빼나요? 

인턴 3 : 아, 그 쪽 팀장님이 안 내주셨어요.

인턴 1 : (장그래 쳐다보며) 거봐요. 이런 일 할 사람은 따로 있단 말이죠.



수출할 오징어 젓갈에 꼴뚜기가 섞인것 같다는 김대리의 전화를 받은 오과장이 각 부서의 인턴들을 모아놓고 젓갈 까대기 (이 까대기는 보통의 까대기와 다르긴 하네요. 포장되어 있는걸 뜯어서 뒤적뒤적 꼴뚜기를 찾아야 되는거니까)를 지시하고 난 후의 상황입니다.

저 재수없게 생긴 인턴1 저 놈. 나중에 나오지만 취업 졸라게 안됩니다. 저딴 마인드 가지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써주나요.

(여담입니다만, 회사는 지 잘났다고 하는 놈 안데려갑니다. 진짜 솔직히 말하면 노예근성이 있는 쪽을 더 선호하죠... 씁쓸....)


일전의 글에서 종합상사는 '서류'로 일을 하는 회사라고 이야기 한 적이 있었는데요. 대개 그렇긴 하지만, 까대기를 비롯한 육체 노동이 좀 필요한 경우가 많아요. 미생에서 저런 상황처럼 제품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진짜 몸으로 때워야 하거든요.

저도 저런 경우가 있긴 했어요. 대두(콩, soybean - 네 맞습니다. 두부 만드는 그거요)를 수입할 때의 이야긴데, 보통 식품을 수입할 경우 식품위생법에 의거하여 포장에 한글표시사항을 기재하거든요. 콩이니까 당연히 포대자루에 담겨있고 그 포대에 한글표시사항이 인쇄되어 있어요. 보통 제품명, 원산지, 수출자, 수입자 등등이 적혀있죠. 

그런데.... 수입자로 A라는 업체 이름이 적혀있어야 하는데 B라고 프린팅 된게 들어온겁니다. 이대로라면 제대로 통관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죠. 급하게 부랴부랴 스티커 제작업체에다 B사 이름을 쓴 스티커를 대량 주문합니다. 그걸 부산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하구요. 창고 쪽에다 부탁해서 작업인력 모집해달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업체에 모든걸 맡겨놓기만 할 수는 없으니 저도 부산으로 내려갔어요. 츄리닝입고....

팔렛트 처리 되어있던 것들을 다 해체하고 포대 하나하나 뒤적이면서 스티커를 붙입니다. 포대 하나가 30kg 짜리에요..... 작업 감독으로 가긴 했지만 저도 멀뚱멀뚱 있을 수만은 없잖아요. 제 아이템인데... 미친듯 힘들더군요. 30kg 콩 님의 위력이란.....



직업엔 귀천이 없어요. 그리고 만약 당신이 육체 노동을 하찮게 여긴다면 그 누구도 당신을 써 주지 않아요.